카드는 있는데 왜 안 될까 — 일본인 방한객을 막아서는 결제의 벽
환전한 원화는 두둑한데,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카드가 튕겨 나온다. 올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 여행자가 관광불편 신고 접수기관(한국관광공사 관광불편신고센터)에 낸 신고는 263건으로, 국적별로는 중국(680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중 4건 중 1건이 결제 관련 불편이었다.
한눈에 보기: 국제 브랜드(비자·마스터카드·JCB 등) 카드 2장 이상 지참 권장 · 대중교통은 실물 충전식 교통카드를 미리 사야 함(모바일 앱 카드는 안드로이드 전용) · 외국인 전용 선불 교통카드 WOWPASS는 인천공항 등에서 여권으로 즉시 발급(wowpass.io) · 배달 앱은 '배달의민족'만 비회원 해외카드 결제를 지원(요기요·쿠팡이츠는 불가)
늘어난 손님만큼 마찰도 늘고 있다. 올해 1~7월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228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8% 늘었고, 연간으로는 384만 명 안팎이 예상돼 2012년 세운 역대 최다 기록을 14년 만에 갈아치울 전망이다. 엔화 약세와 항공사들의 근거리 노선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손님이 사상 최대로 몰리는 지금, 정작 결제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왜 하필 결제에서 막힐까. 카드 관련 신고 중 쇼핑 결제 문제가 56.6%, 택시 요금 결제 문제가 33.4%를 차지한다(2025년 기준). 카드 발급사 Visa의 조사에서도 일본인 방한객은 병원 등 의료서비스(17%)와 소매점(15%) 지출 비중이 특히 높게 나타나, 여러 업종의 매장을 옮겨 다니는 동안 결제 수단이 안 맞는 상황에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소비 패턴을 보인다.
원인은 한국 결제망이 내국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데 있다. 국제 표준방식으로 카드를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되는 비접촉 결제(EMV 컨택리스) 단말기는 한국에서 대기업·프랜차이즈 매장 위주로만 보급돼 있어, 보급률이 약 10%에 그친다는 게 업계 조사 결과다.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삼성페이 같은 한국의 간편결제 앱들도 해외에서 발급된 카드는 등록이 안 된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한국 교통카드는 '페이온(PayOn)'이라는 국내 전용 규격을 쓰기 때문에 해외 카드를 리더기에 대는 것만으로는 요금이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은 현금을 찾아 '티머니' 같은 충전식 실물 교통카드를 별도로 사야 한다. 배달 앱 중에서도 '배달의민족'만 2025년 3월부터 비회원 해외카드 결제를 지원하지만 화면이 한글 전용이고, 모바일 티머니 앱은 안드로이드에서만 충전이 가능해 아이폰 이용자는 아예 쓸 수 없다.
이 문제는 이미 개선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시는 해외 신용카드를 교통카드 리더기에 바로 대면 결제되는 개방형 시스템 '오픈루프'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올해 안에는 새로 설치되는 교통카드 발매기와 티머니 애플페이를 통해 해외카드로 충전이 가능하도록 개선된다. 한국관광공사도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북·대구·부산 등지에 표준 QR 결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결제망이 바뀌는 건 시간문제이지만, 그 전까지는 지갑을 이중으로 채워야 한다. 서로 다른 브랜드의 국제카드 2장, 그리고 공항 입국장에서 여권만 있으면 바로 만들 수 있는 외국인 전용 선불카드 한 장. 이 조합이면 편의점에서도, 택시에서도,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도 카드가 튕겨 나오는 순간을 대부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