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통장 원본, 이제 안 내도 된다
하노이의 한 여행사 창구에 두툼한 서류철이 놓인다. 첫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딸을 위해 어머니가 챙긴 것은 여권 사본만이 아니다. 은행 잔고증명서, 재직증명서, 심지어 집문서 사본까지 끼워 넣었다. 창구 직원이 서류를 훑어보며 한마디 던진다. "작년까지는 통장 원본도 챙겨야 했어요.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추석 연휴를 낀 9월은 베트남에서 한국행 단체관광이 몰리는 성수기다. 법무부가 중국·베트남 등 6개국 단체관광 비자 발급 수수료(1인당 15달러)의 면제를 2026년 12월 31일까지 다시 연장하면서, 베트남 여행업계는 가을 예약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개인 관광객이 가장 자주 걸려 넘어지는 문턱은 수수료가 아니라 서류였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중 베트남 국적자는 7만8235명으로, 태국(14만7481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방한 관광객 상위권 국가이면서 동시에 체류 이탈 위험이 큰 나라로 분류돼 온 탓에, 주베트남 대한민국대사관은 개인 관광(C-3-9) 비자 신청자에게 통장 원본과 잔고증명서, 재직증명서, 근로계약서를 한꺼번에 요구해 왔다. 서류 하나만 빠져도 접수 자체가 반려되는 일이 흔했다.
이 문턱이 낮아진 건 2024년 10월 1일부터다. 주베트남대사관이 발표한 사증 구비서류 개정안에 따라 개인이 직접 신청하는 일반관광(C-3-9)·대도시거주자(C-3-91) 비자는 통장 원본과 잔고증명서 제출이 생략됐다. 지금은 최근 3개월치 계좌명세서 한 장, 그리고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 중 하나만 내면 된다. 사업자등록증·납세증명서·신분증도 번역이나 공증 없이 인정된다.
단체관광 비자는 수수료 면제까지 겹쳤다. 그 결과 단체비자로 입국한 뒤 무단이탈해 불법체류로 이어지는 비율은 2024년 0.19%에서 2025년 0.07%로 낮아졌다. 서류가 가벼워지고 수수료 부담까지 사라지면서,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청하는 개인 관광객 문의가 늘고 있다는 게 하노이 현지 비자대행업체들의 전언이다.
그렇다고 서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신청 전에는 반드시 주베트남 대한민국대사관 사증과나 호치민 코리아비자신청센터(KVAC)가 공지하는 최신 구비서류 목록을 확인해야 한다. 개정 시점마다 요구 서류가 바뀌어 온 만큼, 여행사 안내만 믿기보다 대사관 홈페이지 원문을 한 번 더 대조하는 편이 안전하다. 서류철은 얇아졌지만, 확인하는 습관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